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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2007년 초여름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읽게 됐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다른 작품들도 읽어봤지만 해변의 카프카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해변의 카프카는 하루키가 모든것을 담은 소설이라고 했다.
요새 1Q84를 읽다가 다시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보니 왜 본인의 입으로 모든것을 담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하루키는 팬들도 많지만, 그의 소설이 왜 좋은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외설적이고 적나라하다는 평도 적지 않다. 솔직히 그렇긴 한 면도 없진 않다.



왜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의견인 것 같다.
'읽을땐 그냥 읽었는데 결국에 이 소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고 어렵다'
'읽고나서 스토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생각나는게 없고 허무?하다'




이러한 모든 질문의 답은 소설안에 있다.
소설속에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되는지, 잘 찾아보면 답이 있다.


그리고 하루키는 독자가'읽을때마다 다른 재미가 있고 읽는 사람마다 읽는 방법이 다르다' 라고 해줄 때 좋다고 했다.
하루키 역시 그것을 원하고 있다.



하루키의 소설을 잘 읽으려면 스토리에 중점을 두는 것보단,
주인공의 말을 통해서 작가가 독자에게 어느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하는 그 메시지에 중점을 두어 읽어야한다.
그 주제는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며, 답 또한 모두들 다르다.
심지어는 나 자신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제와 답이 달라질 수 있다.
그 메시지를 지나치고 읽어버린다면 혼란스럽고 재미없을 수 밖에 없다.



초반부에는 홀수/짝수 별로 주인공이 다르고 다른 이야기로 시작한다.
묘사가 자세하기때문에 상상하며 독자 스스로 배경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점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그러한 것이 왜 나오는지 의문을 갖게 되고,
홀수/짝수 별로 나오던 주인공이 점차 연결이 된다.
의문을 가졌던 내용들은 퍼즐조각처럼 점점 맞춰진다.




이것이 일반적인 스토리이며 이 안에있는 메시지를 찾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다.
같은것을 봐도 아는 것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이듯이, 자신과 소설속에 일치하는 무엇을 찾아내면 된다.
그렇기때문에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철학서로 충분히 써낼 수 있는 사람이, 소설로써 소설속에 자신의 철학을 스며들게한 것이 좋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해변의 카프카를 2007년에 처음 읽었을 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이 있었다.
아마도 지금의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이 감동이었을지 모를일이다.

그것은 반쪽뿐인 그림자이다.
초반부에 고양이와 대화하는 할아버지 나카타가 반쪽뿐인 그림자를 갖고있다는 것이 나오지만, 그때는 아직 무슨의미인지 모른다.
하지만 뒤에서 사에키에게 반쪽뿐인 그림자가 무슨의미를 갖는지 나온다.


"사에키 씨의 인생은 기본적으로 연인이 사망한 스무 살의 시점에서 정지했지.
그녀의 영혼에 파묻힌 시곗바늘은 그 전후 어딘가에 딱 멈춰 있어. 물론 그 뒤에도 바깥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또 그녀에게 현실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하지만 사에키 씨에게는 그런 시간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해"

"의미를 갖지 못한다구요?"

오시마 씨는 고개를 끄덕인다. "의미가 없는 것이나 같다는 이야기야.
그것은 사에키 씨는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지.
사에키 씨는 그런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서, 좀 더 개별적으로 앓고 있는거야. 영혼의 기능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좋을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위험하다든가, 그런 말은 아니야. 일상생활에서 사에키 씨는 지극히 정상적이니까"


나도 이 책을 읽던 그 시점에 시간이 멈춘 것을 경험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시간은 흐르지만 내 자신의 내부 시계가 멈춰있는것 같은 느낌을 갖고있었고
친구에게도 얘기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내용이 책에 있었다.
이 책은 즉, 나에게 메타포(metaphor)였던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든 어느 소설에서든 메타포라는 단어가 나온다.



메타포에대한 설명이 나와있는 <해변의 카프카>의 일부이다.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고, 어떤 것은 전혀 선택하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 두가지를 잘 구별할 수 없게 됐어요.
즉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실제로는 내가 그 일을 선택하기 전에 이미 일어나기로 정해져있던 것처럼 생각돼요.
나는 다만 누군가가 미리 어딘가에서 정한 것을, 그냥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고, 아무리 애써 보았자 그런 것은 전부 헛일이라고 말예요."

"그래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는 너인거고, 너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거기에는 아이러니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 오히려 당사자의 장점을 지렛대로 해서 그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미질美質 즉, 타고난 장점이나 아름다운 성질에 의해서 더욱 커다란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거야.
그러나 아이러니가 인간을 깊고 크게 만들거든. 그것이 더욱 높은 차원의 구원을 향한 입구가 되지.
거기에서 보편적인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어.
세계의 만물은 은유라고 하는 메타포거든. 우리는 메타포라는 장치를 통해서 아이러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스로를 깊게 그리고 넓게 다져나간다는 얘기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은유라고 한다.
저 위에 문장들을 은유로 치환해서 읽어봤자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메타포라는 것의 정의는 내가 생각하기에 은유되는 대상이다.



내 마음은 호수이다.
여기서 내마음을 호수로 은유 했다. 호수 메타포이다.

내 마음은 호수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은유할 수 있다.
그 여러가지가 메타포이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말하는 메타포는 이 예제가지곤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도 많을것이라 생각한다.
저 위에서 설명하는 메타포라는 것은 난 이렇게 정의 한다.
(나 역시 내마음대로 해석해서 이곳에 쓰는것이고, 읽는 사람들도 메타포를 다르게 이해해도 상관은 없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다.
만약 이런 운명이 정해져있다고 가정해본다.
"내일 10시에 A의 집은 불이 난다."
내가 불을 내든, 누군가가 불을 내든, 스스로 불이 나든 불이 나게 된다.
굵은 글씨가 메타포이다.




운명이 정해져있다면 이세상은 단순하지만, 메타포를(여러 변수) 통해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한사람의 일생에서 매번 다른 형태로 계속적으로 반복이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가 성장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루키가 다른 의미로 썼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요소가 많으니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한문장한문장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는게 좋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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